꽃 선물을 좋아합니다. 받는 것은 물론이고 주는 것도 즐깁니다. 받을 때 기쁨을 알기 때문에 남에게도 건네는건 지 모릅니다. 화사한 날, 날씨를 닮은 한 송이를 사 들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 달뜬 마음이 드는 이유는 꽃이 품에서 품으로 옮겨갈 때 마주하게 될 상대의 얼굴에 같은 걸 받았을 때 내 기분을 상상해서 그려 넣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 한 친구와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친해지고 싶은 욕심만큼 종종 꽃집에서 꽃을 꺾어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친구에게 안겨준 꽃이 한 송이 두 송이씩 쌓여 열 송이가 되어도 저는 풀 한 뿌리도 받지 못했어요. 속이 상해갔습니다. 하늘이 파랗고 높던 어느 날, 곪은 속만큼 삐뚤빼뚤한 이목구비를 하고 친구에게 물었어요.
“나는 왜 꽃 없어.”
친구는 내내 난감했다고 합니다. 알록달록하기만 하고 쓸모없고 비싼 식물을 받아 들고 집에 가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대요. 꽃이란 게 볼 땐 예쁘지만 매일 물도 갈아줘야 하고 시든 꽃의 추함은 바로보기 어려우니까요. 뒤처리도 깔끔하지 않고요. 손에 자주 꽃을 쥐여주는 걸 보니 자기도 한번은 선물해줘야 할 것 같은데 무용하고 번거롭기까지 한 이 물건에 지갑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상대방의 선호와 관계없이 내가 갖고 싶은 걸 계속 주는 사람과, 상대가 좋아하는 게 뭔지 빤히 알면서도 내 기호 때문에 그걸 주기가 영 내키지 않는 사람이 만나 서로 속앓이를 했던 거죠.
이런 관계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연남동에서 11년 동안 카페를 운영해온 저자는 카페 사장님과 손님과의 관계도 딱 이렇다고 설명합니다. 손님은 커피가 다 식어도 사진찍기 예쁜 카페에서 행복해하는데, 사장님은 장사가 잘 안되면 커피 맛을 의심하며 커피 공부에 더 몰두하고, 더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인다고요. 하고 싶은 일에 집착하는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그걸 제공하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10년 넘게 카페를 운영하면서 느꼈던 카페 경영의 어려움과 노하우를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저자의 여러 조언 중 저는 두 단어를 머릿속 어딘가에 새기기로 결심했습니다. 돈, 그리고 비일상.
고객을 너무 사랑하면 뭐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은 원초적인 행복이고, 선물에도 중독성이 있으니까요.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고객을 좋아하고 선물공세를 하는 내 모습이 사랑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반응일이랑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꽃을 내밀었던 저처럼요.
이 일을 아무런 보상 없이 계속해내기는 어려워요.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연애가 아니라 장사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고객에게 계속해서 뭐라도 좋은 걸 주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밖에 모르는 계산적인 사람처럼 숫자를 더하고 빼고 따져야 합니다. 멋이 없어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사랑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진 돈의 범위 안에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됩니다. 고객을 더 기쁘게 하는데 더 큰 비용이 필요하다면 더 많은 돈을 벌 궁리를 해야 합니다. 이때 고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사기를 치면 안 됩니다. ‘난 널 사랑해서 항상 네 생각만 해.’는 안 됩니다. ‘너에게 좋은걸 주고 싶어서 돈 생각을 많이 해. 이게 나의 한계야. 그래도 널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야.’ 정도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고객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답은 일상과 일상 너머, 즉 비일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돈된 일상은 우리에게 어떤 틀을 제공해 안정과 평안을 주지만 그래서 지긋지긋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서비스는 둘 중 하나입니다. 흐트러진 일상을 정돈되게 도와주거나, 지겨운 일상을 잠시 잊게 해주거나. 고객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고, 그 안에서 어떤 행복과 권태를 느끼는지 자주 관찰하고 상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친구는 난감하긴 했지만, 꽃을 받을 때마다 설레기도 했다더라고요. 꽃은 남자 손에서 출발해 여자 손에 도착하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새로움이 좋았다고요. 현실 세계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번거로움과 부담스러움이 더 커서 실패한 서비스이긴 하지만요.
제 꽃 선물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감동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상대방이 간절히 원했던 걸 주거나, 원했는지도 몰랐던 걸 줘야 합니다. 즉 유용하거나 놀라울 정도로 탁월해야 합니다.
요즘 연희동 산책팀이 연희씨에게 주려고 하는 것들이 유용하고 놀랄 만큼 탁월한 지 자주 돌아봅니다. 어느 날은 자신감이 넘치고 어느 날은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앞으로도 내내 이 확신과 의심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예쁜 사랑을 하기는 글렀구나 생각합니다. 대신 오래 사랑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오랫동안 당신을 기쁘게 할 한 가지 고민을 해왔다는 걸 상대방이 알게 된다면 그때는 그것 자체로 탁월함에 도달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