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직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오늘은 면접이라 예외인데, 제가 평소에 화장을 안 합니다. 토너, 크림 바르는 게 전부인 사람이 7년 동안 뷰티 업계에 있다 보니 100% 퍼포먼스를 못 내는 것 같아서 아쉽더라고요. 해서 다음 커리어로는 내가 고객인 서비스를 개발/운영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 자신을 maximum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센드버드 마지막 면접에서 나눴던 대화다.
3, 6, 9 직장인 슬럼프 전설이 있다. 연차가 3년씩 쌓일 때마다 일 하기 싫어지는 상태가 온다는 거다. 나도 첫 직장에서 이 시기에는 퇴사하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한다는 말을 선배들로부터 수 없이 들었다. 그 슬럼프가 정확히 3년 단위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하다가 게으름 부리고 싶은 시기가 주기적으로 왔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 한숨이 푹푹 나는 이 시기에 유독 Why I exist 즉, 내 존재의 의미를 자주 생각하게 됐는데, 정답도 없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이니 오랫동안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않아도 타당한 핑계가 되며, 답을 구하지 않아도 용인됐다. 그렇게 잠시 질문을 묻어두고 관성을 따랐다. 그리고 답을 얻지 못했으니 같은 질문은 주기적으로 다시 불쑥 튀어나와 앞으로 걸어 나가는 걸 방해했다.
신체가 약해지는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효율을 끌어낸다. 암 진단부터 수술 날 까지 현실감각이 없어 슬프지도 충격을 받지도 마음의 동요도 없었다.(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정신승리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여러분 가능합니다!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저 병원을 찾고, 수술 일자를 원하는 날짜로 고쳐 잡고, 다가오는 집 계약 기간을 수습하다가 실패하고 팔자에도 없는 매매 계약을 위해 부동산을 전전하고 대출과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문고리까지 골라야 한다고 해서 빡쳐서(?) 문고리 필요 없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게 내 현실이구나를 깨닫기 시작한 건 반쪽짜리 갑상선으로 전과 같은 일상을 꾸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다. 급격한 체력 저하로 고달팠으며 내 몸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쓸 수 없다는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게 뭔지 모를 뿐.
약해진 체력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추려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 망할 의미였다. 해결하지 못한 Why I exist는 미저리처럼 들러붙어 이제는 답을 내려야 할 때라고 독촉했다. 수술 후 1년간 아주 약한 체력으로 느릿느릿 결론을 내려보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떤 종류의 격차’(정보, 세대,디지털 리터러시, …), ‘환경 문제’, ‘소외’를 해소해 개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게 나에게 중요한 미션임을 깨달았다. 건강하고 기운이 넘쳤다면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고 미뤘을 게 분명하다. 이것이 여림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소명 의식은 꼭 하나의 계기로 비롯하지 않고 한 개인이 살아온 삶의 총체로 다가온다. 그리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어딘가에 몰두하고 집중하다 보면 ‘어? 여기가 어디지?’ 할 때가 있는데, 이때 다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소명감이다. 샤갈의 <산책>이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이유는 한쪽 손이 서로에게 묶여 하늘을 둥둥 떠다니다가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겁이 많은 나는 나에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는 걸 눈으로 보고 위기의식을 갖기 위해 4학기 짜리 MBA 과정을 수료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효용이 없고, input 대비 output이 빈약할 수 있으나 어떤 가치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빗나간 내용인데,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고 어우러진 삶을 살고 싶다. 이걸 떼어 내려 하는 순간 일상을 보낼 때 일이 끼어들면, 반대로 일을 하는데 일상이 끼어들면 양자 간에 간섭받고 방해한다는 느낌이 불쾌하게 만드는 듯. 하루종일 일하면서 하루종일 일상을 보내는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게 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의 독후감인지는 읽어보시면 안다?